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 아마 그는 그 밤에 아무도 몰래 울곤 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세상이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이제 그가 조용히 울던 그 밤을 기억하려 한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흐느껴본 자들은 안다 자신이 지금 울면서 배웅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울음이라는 사실을 이 울음으로 나는 지금 어딘가에서 내 눈 속을 들여다보는 자들의 밤을 마중 나가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고 아마 그는 자신의 그 밤을 떠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끝없는 약속을 하곤 했을 것이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살았다고 세상은 마중과 배웅의 사이에 있는 무수한 주소들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있다고 우리는 그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전대통령 영결식, 나는 체육대회의 자리에 있었다. *내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마음에서 잊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녁회식자리. 영감의 말도 그냥 받아넘길 수 있었던 듯 하다. *산산조각 *제망매가-생사불이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이 자리에서 우리는 가는 당신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산산조각 나더라고 그것이 당신이 나에게 남긴 것인지 모릅니다.
희망이란 말도 엄격히 말하면 외래어일까. 비를 맞으며 밤중에 찾아온 친구와 절망의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희망을 생각했다. 절망한 사람을 위하여 희망은 있는 것이라고 그는 벤야민을 인용했고, 나는 절망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데카르트를 흉내냈다. 그러나,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유태인의 말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에 관해서 쫓기는 유태인처럼 밤새워 이야기하는 우리는 이미 절망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일까. 통근이 해제될 무렵 충혈된 두 눈을 절망으로 빛내며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절망의 시간에도 희망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 어디선가 이리로..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성과급..문제를 생각하다가 '사이'를 생각하다가 교사와 성과급..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왜 이 시였을까. 어머니의 병을 무심..
한 번 불려간 것들은 다시는 오지 않는 것인가 내 등 두드리며 여기 서서 기다려라 하고 간 바람은 산 넘고 물 건너가 다시는 오지 않는다 대수풀에 머문 구름에게 물어도 구름 위에 날개 접은 솔개에게 물어도 바람이 한 번 간 곳 알지 못한다 한 번 불려진 별들은 다시는 빛나지 못하는가 간밤에 불려진 한 별 큰 눈으로 지상을 굽어보며 빛나다가 새벽 하늘가로 스러져서는 다시 빛나지 않는다 한 번 흔들린 풀들은 다시는 멈추지 못하는가 제 선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 한 번 고개 돌린 풀들 다시는 고개 돌리지 못하고 서서 흔들리다가 누군가의 찬 낫에 이슬을 흘리며 쓰러진다 한 번 눈 부릅뜬 것들은 다시는 눈뜨지 못하는가 여름 잎사귀에 눈 부릅뜬 햇살 하나 잎사귀를 녹이며 구르다가 돌 위에 떨어져 돌을 태우고 다시 눈..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 쉬는 공기(空氣)여 시궁창에도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공기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자유여. 너를 부르마 (음~) 너를 부르마, (음~)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사랑이라 하마 아무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쉬는 공기여, 시궁창에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새삼스레 내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