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렵혀진 물이나 썩을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식은체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길을 가지 않는가 때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길을 가다가 옆으로 다른 물이 흘러들어오거들랑 더럽다 피하지 말고 썩었다고 코막지 말고 네 모습 흔..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거시기 슈퍼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는 자기집 층수보다 한 층 위에서 내려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함께 탔던 모기들도 우르르 같이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기가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복선생도 그렇게 해보라는 충고를 준다 그 뒤로 나는 모기가 많은 날이면 부러 그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두층이나 걸어 올라간다 참 나쁜 습관이다 # 나에게 나쁜 습관은 무엇일까? 직장에 있다보면 얄팍하게도 내 앞의 이로움에 움직이는 몸을 볼 수 있다. 싫으면 피하는 것이 되려 은근히 내 이익됨을 보려는 것이다. 피함이 아니라 그걸 찾아갔던 것이니..
수원 백씨(水原 白氏)이름도 없이 성씨만으로 아흔 해 동안이승에 머물렀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말년에 오체투지로 화장실도 기어다니고밥도 엎드려 잡수셨는데꿈에 소가 보이니 때가 됐다시며자신의 갈 길을 예언하신 뒤홀연 몸 벗어버리고 열반에 드셨다강릉 옛집을 마지막 떠나시던 날크고 고운 목련이 글썽이며 온몸으로꽃을 피운 거 당신은 아시는지가족들의 울음소리 뒤로하고상여꾼보다 먼저 선산으로 향하시던당신의 짠짠한 걸음걸이에목련나무 밑둥이 잘게 떨리던한 생의 메아리를나는 듣고 말았으니# 나의 외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그래,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메아리 남기고.. 이렇게 짠짠한 걸음걸이로 사라지고 싶다. 오랜 후에..
어제 어제는 네 편지가 오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적막한 우편함을 쳐다보다가 이내 내 삶이 쓸쓸해져서, , 李賀의 를 중얼거리다가 끝내 술을 마셨다, 한때 아픈 몸이야 술기운으로 다스리겠지만, 오래 아플 것 같은 마음에는 끝내 비가 내린다 어제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환청에 시달리다 골방을 뛰쳐나가면 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는 소리가, 자꾸만 부서지려는 내 마음의 한 자락 낙엽 같아 무척 쓸쓸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 메마른 가슴에선 자꾸만 먼지가 일고, 먼지 자욱한 세상에서 너를 향해 부르는 내 노래는 자꾸만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한다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다,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 언덕 끝에 오르면 가파른 생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들의 음악만이 푸르게 출렁거..
Threw some chords together The combination D-E-F Is who I am, is what I do No one's gonna let it down for you Try to focus my attention But I feel so A-D-D I need some help, some inspiration (But it's not coming easily) Whoah oh... Trying to find the magic Trying to write a classic Don't you know, don't you know, don't you know? Waste-bin full of paper Clever rhymes, see you later These words ar..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은유환유의 생각*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지나감을 안다는 것은 아직 붙잡고 있다는 것이나,..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 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남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내가 잘 하지 못하는, 아니 제일 하기 싫어하고 일부러 만들지 않는 상황이 있다면 그건 혼자 밥 먹는 일일게다. 대식구로 살았던 어린 날에 대한 추억 때문도 아니고, 어느날 마주친 혼자 밥상을 대한 날의 그 공허함과 무거움이 함께했던 어정쩡함을 기억하기 싫은 것도 아니고, 그냥 오롯이 밥에만 집중해서 먹어야 하는 게 싫다. 완벽하게..
파고다공원-정호승 아버지 파고다공원에서 '영정 사진 무료 촬영'이라고 써놓고 플래카드 앞에 줄을 서 계신다 금요일만 되면 낡은 카메라 가방을 들고 무료 봉사 하러 나온다는 중년의 한 사진사가 노인들의 영정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 노인들의 흐린 햇살 아래 다들 흐리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줄의 후미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사진은 나중에 찍고 콩국수나 먹으로 가시자고 해도 마냥 차례만 기다린다 비둘기가 아버지의 발끝에 와서 땅바닥을 쪼며 노닌다 어디서 연꽃 웃음소리가 들린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에 새겨진 연꽃들이 걸어나와 사진 찍는 아버지 곁에 앉아 함께 사진을 찍는다 사람이 영정 사진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 부처님께 밥 한 그릇은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 부처님께 밥 한 그릇은 올라야 하는가 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