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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백씨(水原 白氏)
이름도 없이 성씨만으로 아흔 해 동안
이승에 머물렀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말년에 오체투지로 화장실도 기어다니고
밥도 엎드려 잡수셨는데
꿈에 소가 보이니 때가 됐다시며
자신의 갈 길을 예언하신 뒤
홀연 몸 벗어버리고 열반에 드셨다
강릉 옛집을 마지막 떠나시던 날
크고 고운 목련이 글썽이며 온몸으로
꽃을 피운 거 당신은 아시는지
가족들의 울음소리 뒤로하고
상여꾼보다 먼저 선산으로 향하시던
당신의 짠짠한 걸음걸이에
목련나무 밑둥이 잘게 떨리던
한 생의 메아리를
나는 듣고 말았으니
# 나의 외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그래,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메아리 남기고.. 이렇게 짠짠한 걸음걸이로 사라지고 싶다.
오랜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