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자는 숲 속길을 걷다가 문득 범종소리를 들었다. 살아갈수록 멀어지는 진심이 내 안에도 진흙 속의 푸른 하늘처럼 펼쳐져 있음을 일깨우는 저 범종소리에, 이미 대나무며 상수리 나무들은 다 깨달아 별스런 일도 없는데, 오직 나 하나만 우둔한 먹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나 하나만 천하의 먹통이라면, 저 범종소리는 다름아닌 무쇠공 같은 나를 깨기 위해 저렇게 거듭거듭 울고 있는 것이리라.* *차를 타고 도시의 건물 숲 사이를 걸어간대도 멀리서 문득 범종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살아갈수록 멀어지는 진심과 그 진심이 통하지 않는 삶속에도, 그래도 푸른 하늘처럼 무엇인가를 꿈꾸게 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들수록 주책만 늘고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점점 젊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요귀妖鬼지 사람이랴 거울공장 노동자들은 늘 남의 거울을 만들어놓고 거울 뒤편에서 주물呪物처럼 늙는다 구리거울을 만들던 어느 먼 시절의 남자를 훤히 비추던 보름달이 곰팡이도 녹도 이끼도 없이 빌딩 모서리 스모그 위로 솟고 있을 때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가 껄껄껄 웃을 만큼 낙천적인 해골은 누구인가?*2004. 올해의 좋은 시. # 시험보는 아이들 사이에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거울을 보다가 직전에 가르친 '경설'을 생각하다.거울을 보면서 껄껄 웃을 수 있을 만큼의 배포는 없는 게 맞다. 싱긋 웃어보았더니 어색하다. 다른 사람들도 이리 어색하게 보는가? 웃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낙천적 해골이라....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