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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비 미납학생들을 향한 "밥 먹지 마라" 등 충암고 교감의 막말 파문과 경남도지사 홍준표의 무상급식 중단으로 인해 학교의 입장과 위치가 다시 한 번 명료하게 드러났다. 흔히들 학교는 객관적이고 중립적 입장에 위치 지어져야 한다고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사회적 제도인 학교는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권력의 많고 적음에 따라 학교의 관리자 계급에 의해서 차별이 구조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빈곤층에서 중간층으로의 이동이 제약되어 계급이 재생산되는 현상이 심화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소득 이동성이 줄고 부가 집중되는 사회에서는 학교의 관리자 권력은 더욱 막강해진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P.Bourdiew)는 이를 문화자 자본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부르디외는 문화생활 장면에서의 계급적 불평등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하며, 경제활동에서의 자본의 소유, 분배 및 유통과정에 따라 계급이 구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자본의 소유, 분배, 교환정도도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본다. 나아가서 문화적 불평등을 계급간의 구조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보고 있다.

지배계급의 부모는 경제자본을 활용해 자녀가 문화자본을 체화하도록 한다. 즉 지배계급의 지식, 교양, 취미, 감상 등 지배계급의 아비투스(habitus)를 습득하도록 한다. 이 아비투스는 경제자본과 달리 은폐되면, 정당화된 상속재산의 성격을 띤다.

그리고 문화자본의 불평등성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학교제도가 담당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학교는 계급의 구분을 정당화하고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학교가 중립적이라는 환상은 무너지고, 지배계급의 문화와 논리가 학교를 지배하게 된다. 학교가 상징적 폭력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 폭력은 가시적, 직접적 폭력이 아닌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런 상징적 폭력은 기존 사회의 힘의 관계, 질서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사회에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폭력이 실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교는 문화자본의 불평등한 분배와 교육체계의 서열화를 정당화함으로써 사회적 차이, 사회적 위치의 위계화를 사회구성원들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게 하는 제도이다. 시험이나 경쟁, 학위는 중세귀족의 서품식과 같이 모든 사회적 능력을 정당하하는 사회적 마술의 효과를 갖고 있다. SKY대학 출신은 고위관료, 의사, 경영자, 정치지도자, 지식인 등의 지배계급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학교는 이러한 교육자본을 지배계급에게 세습화시켜 중세 귀족혈통의 상속자들과 같이 오늘날 '세습적 귀족학교'를 낳는다.

이처럼 학교시스템은 기회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자본의 불평등한 분배와 배제를 고착화함으로써 위계화된 기존 사회질서를 자연스러운 것, 정당화된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학교가 중립적이고 객관적 지식의 전달이라는 교육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먼저 할일은 교육 불평등을 혁파하는 것이다. 이것이 헌번재판소의 결정과 문관하게 전교조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 배성인/한신대/2015.0601.

 

 

 

교육에 대한 고민을 이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적으로 이런 문화자본까지 고착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학교라는 명시를 하지 못했던, 혹은 그대로 따라왔던 시간에 대한 반성으로 옮겨놓는다. 그럼에도 분배를 위한 행동이나 철학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나의 본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