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늘 91학번임을 자랑하며 살아왔다.
오늘, 72년생
이 세상을 바꾸고자 소리지르며 목숨을 던진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
할 만큼 후퇴했습니다. 할만치 침묵했습니다. 자. 끊어버리십시오. 억압의 사슬을.
지난 1990년대 전교조 교사들의 해직사태를 마음 아프게 여기다가 참교육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고 심광보 군은 가난한 농사꾼의 5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주벽과 무분별한 행위로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받았으며 어머니는 언어장애가 있으셨다. 또한 큰 형은 고등학교 때 농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
심군의 형은 농기구를 빌리러 갔다가 집안 문제로 모욕적인 처우를 받고 크게 싸운 후 홧김에 죽었다고 한다. 이에 심군은 가난으로 인해 인격적인 대우를 못 받는 것이며 다시는 그런 죽음이 되풀이 되서는 안 된다고 꿋꿋하게 강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참교육”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을 89~90년,
사람을 평등하게 보며 사랑의 학교를 만들려는 참교육에 희망과 보람을 느끼게 되어.
중학교 때는 반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가난했지만 ‘똑똑하고 착한애’였다고 중학교 동창들은 그를 추억했다. 집안의 어려운 형편으로 실업계인 공고에 입학하려 했으나 주위의 권고로 인문계인 충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충주고는 한해 100명가량을 서울의 대학으로 보내는 명문 고등학교였다.
△'참교육의 불꽃으로' 애국학생 고 김철수군추모집 / 애국학생 고 김철수군 추모사업준비위원회 ⓒ청소년뉴스 바이러스
어렸을 적 경험을 통해 세상의 불평등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뼈저린 고민을 해오면서 그는 점차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식상황 속에서 “참교육”이 사회문제화 되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며 사랑의 학교를 만들려는 참교육에 희망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의 이런 참교육에 대한 갈망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2학년 당시 휴학을 하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애착에서 연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변하는 흐름 속에서 학교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머무른 점에 대해서 교육에 대한 심각성을 문제제기하며 학교의 비인격적인 처사에 그의 분노는 증폭되었다.
시대는 계속변하지만 변하지 않았던 학교
고뇌하던 심군은 9월 7일 오후 8시 20분경 충주시 성서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몸에 시너를 뿌린 뒤 불을 붙이고 뛰어내렸고 곧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화상이 심해 결국 다음날 오전 5시께 꽃다운 나이로 숨지고 말았다. 그는 분신자살하기 전날 전교조 충주지회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진정 참교육의 가르침을 실현시키길 희망하는 내용의 글을 끝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심군은 지난해 3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받아 명예를 회복했으며 위원회는 지난 1월 충주고교에 명예졸업장 수여를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애들이 좋아하고 따랐던 국어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졌을 때, 겉멋이라고 생각했던 해였다.
그리고 우리는 한 친구에게 가해졌던 담임선생님의 폭력에 맞서서 침묵시위아닌 시위를 했고..
학생주임 선생님의 중재로 우리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면서 다시 학업에 임했던 게 기억난다.
아울러, 여학생이 전체 조회시간에 창밖을 내다본다는 이유로-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교실에서 폭력을 내보이셨던 우리의 담.임.선.생.님.은.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러나 너희들이 공부를 계속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의 자존심은 주장하지 않겠다."라면서 매우 모호한 태도로 사과라는 것을 했고....지금은 그 옛 학교의 학생부장으로 재직중이시다.
#그때는 모두 비슷했나 보다.